Wrestler Rewind<16>-세계를 평정한 희대의 사기유닛, '빅 밴 베이더' 레슬러 리와인드


세계를 평정한 희대의 사기유닛, '빅 밴 베이더'

요즘의 레슬링 팬들은 눈이 너무 높다. 새로운 선수가 링에 등장하게되면 머리붙어 발끝까지 철저하게 난도질당한 후 그제서야 평가가 이루어진다. 덩치가 어떻고 기술이 어떻고 마이크웍이 어떻고 레슬링 스타일이 어떻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장르가 철저히 자극에 의한 쾌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자극은 점점 순응되어 팬들은 더욱 강하고 전에없던 것들을 원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기존에 있던 것으로는 반드시 기존 이상으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으며 좀 더 참신하고 혁신적인 것들을 만들어내기위해 레슬러들은 모든 역량을 쏟아내야 한다.

수십 년 전, 프로레슬링이란 '힘 좋은 거한들의 힘겨루기'라는 표현으로 함축될 수 있었다. 물론 '힘'이라는 요소에 상응하는 '기술'이라는 항목으로 특화된 실전형 레슬링이나 거구들의 사이를 비집고 태어난 경량급 레슬링도 나름의 인기를 끌었지만 결코 주류는 아니었다. 일류 프로레슬러를 꿈꾸는 많은 거구들이 헐크 호건과 앙드레 자이언트같은 커다란 이름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꿈을 다 펴지 못한 채 떠나갔고 살아남은 이들은 그저 '프로레슬러'라는 명함을 달고 먹고살 수 있다는 현실에 안도해야 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등장한 한 선수는, 이 좁디 좁은 레드오션에서 기어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새로운 프로레슬링의 태동을 알렸다.


레온 화이트는 심각한 무릎부상으로 은퇴한 후,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빅 밴 베이더로 잘 알려진 레온 화이트는 본래 미식축구 선수였다. 미식축구 출신의 프로레슬러는 수도없이 많지만, 레온 화이트의 경우는 이미 대학 때 전미 올스타에 뽑히고 프로선수로선 NFL 슈퍼볼에까지 출전했던 탑클래스의 선수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미식축구선수가 프로레슬러가 된 경우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은퇴할 정도의 부상, 다른 하나는 실력미달로 인한 은퇴. 그는 전자의 경우였다. 심각한 무릎부상으로 은퇴한 후, 잠시 부동산업계에 손을 댔다가 다른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AWA를 통해 데뷔한 그는 곧 일본 프로레스계의 눈에 띄어 마사 사이토와 함께 바다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의 일본 데뷔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베이더라는 링네임을 부여받은 그는(본래 이 기믹은 워리어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원래 예정되어있던 안토니오 이노키와 초슈 리키의 IWGP타이틀전에 난입했고 순식간에 이노키를 때려눕히고 3카운트를 따냈던 것이다. 당시 경기장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이유로 관중들의 불만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이 엄청난 데뷔전은 일본 팬들로 하여금 그의 존재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하였다. 이후 그는 신일본의 대표적 용병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신일본과 제휴관계였던 wCw를 비롯, 전일본 프로레스까지 등장하며 세계를 넘나드는 특급선수가 되었다.


전세계를 뒤져봐도 그와 같은 선수는 없었다

이 시기 일본엔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있었지만 베이더같은 선수는 없었다. 아니, 전세계를 뒤져봐도 그와 같은 선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앙드레 자이언트를 제외하면 그보다 무거운 이가 없을 것 같고 로프반동 한 번만 하면 숨이 차서 쓰러질 것 같은 뚱보가, 경기만 시작되면 링 위의 그 누구보다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으로 시합을 지배해 나갔다. 빅맨 특유의 파워풀한 무브는 물론, 잠깐 몸담았었던 복싱을 활용한 타격기에 경량급선수들도 쓰기 어려운 문설트같은 공중기들도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이미 포화돼버린 빅맨들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운동능력과 경험을 살려 새로이 개척해낸 블루오션이었고, 그것은 디젤, 테스트를 거쳐 어비스, 랜스 호잇 등으로 이어지는 스피디 빅맨의 토양이 되었다.

덩치 큰 선수들이 스피디한 경기를 하기 어려운 것은 부상에 대한 우려때문이다. 상대 선수를 부상입힐 가능성도 물론 크지만, 그보다는 과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자신의 몸에 많은 무리가 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이더는 자신의 안위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채 200kg의 육중한 신체를 마구 내던졌고 좀 더 강하고, 좀 더 위험한 것을 원했던 일본의 스트롱스타일, 왕도프로레스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최고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주로 일본선수들에 대해서 악역을 맡아야 했던 미국용병이었음에도, 그가 보여준 파격적인 경기들과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는 그를 일본의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 놓았다. 90년대에 그는 신일본, 전일본, wCw의 헤비급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었고 가히 세계최강이라 불릴만 했는데, 때문에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당시 최강급 용병이었던 '불침함'스탄 한센이나 '살인의사'스티브 윌리엄스 등과는 다른, '황제전사'라는 동급 최강의 수식어가 될 수 있었다. 이 황제전사는 말 그대로 끝판왕이었고, 신일본이든 전일본이든, 혹은 wCw이든 최고가 되기 위해선 누구나 넘어가야만 하는 최후의 장벽이었다. 안토니오 이노키를 비롯한 신일본의 필두들이 그와 사투를 벌였고 점보 츠루타 사후 전일본의 사천왕은 각각 베이더와의 일전을 거친 후에 비로소 인정받았다.


그는, 최고가 되기 위해선 누구나 거쳐가야만 하는 최후의 장벽이었다

그러나 그의 레슬링 스타일은 화려하기도 했지만 당시로선 굉장히 실전지향형이었고, 이는 '강함'을 추구하는 일본이나 wCw에선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강한척 하는 것'을 중시하는 WWF에선 그의 진가가 발휘되지 못했다.(실제로 WWF에서만 타이틀경력이 없다) WWF를 나온 후에도 그는 일본에서 여전히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고 은퇴한 지금도 스탄 한센, 테리 고디, 스티브 윌리엄스 등과 더불어 일본 프로레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용병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WWF에서의 그저그런 활약 때문에 많은 이들의 기억에 그가 '좀 강했던 빅맨'정도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전에 스팅에 대해서 얘기할 때 스팅은 항상 최고이긴 했지만 최강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베이더는 꼭 그 반대의 경우이다. 힘, 스피드, 기술, 어느 면에서도 최강이었지만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지는 못했으며 한치의 빈틈도 없어보이지만 그렇기에 그를 꺾으므로써 더 큰 드라마를 선사했으며 간혹 아무도 예기치 못한 한 번의 패배로 인해 더욱 더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던 선수. 2005년 WWE 타부 튜즈데이에서 뒤뚱거리는 몸을 이끌고 나와 바티스타에게 핀폴을 당했던 그를 보며 괜히 마음이 심란했던 것은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최강의 사기유닛과 세월의 막강함에 두 손 들어버린 뚱뚱한 중년 아저씨가 서로 자기가 진짜라며 부대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진출처 : http://www.onlineworldofwrestling.com/



Wrestler Rewind<17>-하시모토 신야

덧글

  • Cactus™ 2010/04/15 13:24 # 답글

    레슬러 리와인드로 미사와 요청해도 될까요?
  • 황룡사목탑 2010/04/15 22:12 #

    미사와는 아직 보류중입니다. 현재 하시모토를 주제로 쓰고있는데 아무래도 떠난지 얼마 안된 선수들은 예민한지라...
  • 앙겔 2018/06/21 13:26 # 삭제 답글

    최강의 사나이 베이더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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