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estler Rewind<15>-진짜 피플즈 챔피언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레슬러 리와인드


진짜 피플즈 챔피언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짜고 하는 쇼라고 하지마는, 프로레슬링도 엄연히 '스포츠'가 베이스가 되는 '엔터테인먼트'다. 때문에 선수의 운동능력은 무엇보다 기본이 되고 반드시 갖춰져야 할 필수요소이다. 상황에 따라선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젊을 때부터 차근차근 기본기를 다져야 하며 나이든 선수들은 릭 플레어나 핏 핀리정도가 되지 않을 바에야 중년이 되기 전에 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사람을 한 번 살펴보자. 그는 서른 다섯이 넘어서 처음 프로레슬링을 시작했고 곧바로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 신기한 케이스이다.

현재 프로레슬링에서 대기만성이라 꼽히는 건 데이브 바티스타 정도이다. 프로필상 그가 처음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게 스물 여덟, OVW에서 경기를 시작한 게 서른, WWE에서 두각을 나타낸 게 서른셋으로 대략 30이 한참 넘어서야 빛을 본 것을 두고 우리는 '노익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DDP를 보자. 그는 스물 셋에 처음 프로레슬링을 시작했으나 무릎부상으로 곧바로 레슬러 그만두어야 했고 나이트클럽 일을 병행하면서 레슬러들의 매니저, 혹은 링아나운서로 일했다. 그러다 91년에 wCw로 흘러들어가 선수 매니저, 분석논평가 등을 맡아 일하는 동시에 wCw의 선수양성기관 파워플랜트에서 훈련을 받았고 그 해 비로소 제대로 된 프로레슬러로 데뷔할 수 있었으니 이 때가 그의 나의 서른다섯이었다.


35살, 늦은 데뷔..


그냥 보통의 늦깎이 선수라면 말도 안했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그 이후 이뤄낸 업적이다. 그가 몸담은 이후 wCw가 망할때까지인 10년동안 그는 헤비급챔피언 3회, US헤비급챔피언 2회, 태그팀챔피언4회, TV챔피언 1회의 경력을 쌓았다. 이게 35살에 데뷔해 그가 45살때까지 쌓은 커리어라니 믿어지는가? 재차 강조하지만 프로레슬링은 스포츠가 아니다. 그냥 잘한다고 결과가 따라오는 종목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이 중년 레슬러의 성공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야구 등의 스포츠에 소질이 있었던 DDP는 1979년에 캐나다에서 프로레슬링에 처음 도전하지만 심각한 무릎부상으로 인해 곧바로 은퇴해야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을 그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 없었던 그는 선수가 아닌 다른 방면으로의 길을 모색한다. 레슬매니아 6에서 리듬앤블루스(홍키통크맨&그렉 발렌타인)의 운전기사를 시작으로 AWA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매니저 역할을 수행했고 배드 컴퍼니, 다이아몬드 익스체인지 등의 그룹을 서포트했다.(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라는 이름도 이 때 완성됐다. 댈러스는 그가 좋아하는 미식축구팀, 페이지는 그의 본명)


AWA 매니저 시절


그의 이러한 노력은 점차 알려졌고 91년 wCw와의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가 맡은 첫번째 일은 패뷸러스 프리버즈의 매니저였는데, 이후 다른 그룹들의 매니저를 계속 하면서 해설논평가까지 겸업했고 파워플랜트에서 훈련까지 받는 쓰리잡을 병행한다. 생각해보자. 나이가 서른다섯인 매니저겸 해설자 아저씨가 느닷없이 프로레슬러가 되고싶다며 훈련을 자청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파워플랜트의 트레이너중 한명이 버디 리 파커는 DDP보다도 어렸다. 단체에서는 그의 프로레슬러 데뷔를 허락하긴 했지만 그저 다른 선수들의 보조격으로서 생각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DDP는 달랐다. 10여년 전에 한 번 포기했던 프로레슬러라는 꿈을 다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는 필사적이었다.

91년 스타케이드에서 첫 데뷔전을 치르긴 했지만 그는 확실히 부족한 것이 많았다. 거기다 92년에 회전근 부상까지 더해 2년동안 재활에 매달려야 했고 그동안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언지 찾기위해 매진했다. 거기서 나온 게 좀 더 관중들과 가까워진 캐릭터였다. 관중석을 통해 등장하고 하이파이브를 날리는 그를 보며 팬들은 즐거워했고 다른 선수들보다 친숙한 프로레슬러로서 다가갈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단숨에 하이미드카더로 성장할 수 있었고 TV타이틀, US타이틀을 차례로 따내며 점점 최고를 향해 걸어나갔다. 또한 링 밖에서의 교류에도 신경쓰기 시작해 훗날 wCw를 좌지우지하는 에릭 비숍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고 다른 선수들이나 업게 관계자들과도 많은 친분을 쌓아 그들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은퇴한 지금까지도 프로레슬링계에 걸쳐있는 그의 영향력은 무시못할 수준이라고 한다.

wCw가 정점에 올라서가 시작한 1999년은 DDP에게도 최고의 시절이었다. 당시 단체는 헐크 호건 등 WWF에서 이적해온 선수들과 기존 간판선수들인 스팅, 릭 플레어 등과 새롭게 떠오르는 골드버그, 자이언트같은 선수들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처음으로 wCw 월드헤비급 타이틀을 따냈고 피플즈 챔프라는 최고의 영예가 담긴 별명을 얻게되었다. 처음 US타이틀을 따낸 97년부터 5년동안 도합 9번의 타이틀을 따낸 그는 단체의 중심이었고 최고의 선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 시기 wCw에서 가장 인기있던 선수는 누가뭐래도 단연 DDP였으니까. 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선수가 20여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기어이 최고가 된다는, 드라마로 치면 단편극장으로도 쓰지 못할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그는 해내고야 말았다.


당시 wCw에서 가장 인기있던 선수는 누가뭐래도 단연 DDP

2002년 wCw가 WWE에 흡수되면서 그도 부커T 등 다른 간판선수들과 함께 WWE로 이적했다. 물론 그 뒤의 행보는 다들 알다시피 썩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사실 wCw출신으로서 이정도나마 WWE에서의 활약이 기억되고 있는 선수는 부커T와 릭 플레어 정도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박대한 대접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쨋든 타이틀 구경정도는 했으니까. 하지만 대개의 wCw 선수들이 그랬든, 그 또한 그의 레슬링 생명은 단체가 망하면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WWE에서의 활동, 혹은 이후 TNA에서의 활동은 그저 그의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위한 짧은 단막극이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의 전성기는 화려기 때문이다. 그래서 WWE에서 그를 아무리 박하게 대우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찌질했던 그의 모습에 wCw 탑스타의 업적이 훼손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일찍 찾아왔던 좌절. 그럼에도 오기부리듯 더더욱 그 길만 고집하며 오랜 세월을 통해 기어이 역경을 극복해내고 끝내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보인 그야말로 진짜 피플즈 챔피언이며 그 모습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우리가 또한 배워야 할 챔피언의 삶이기도 할 것이다.




사진출처 : http://onlineworldofwrestl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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