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estler Rewind<8>-웅장한 거목의 고결한 희생, '스팅' 레슬러 리와인드


웅장한 거목의 고결한 희생, '스팅'

한 그루의 거목을 얻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 뿐만 아니라, 거목의 그늘 아래에서 시들어가는 작은 초목들의 희생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거목을 키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곧게 자란 거목이 한참 아래 있는 작은 초목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비켜주고 스러져가는 일이다. 자신이 받아야 할 햇볕을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고 그 옆에서 묵묵히 다른 풀들의 양분이 되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몸을 태워 따뜻함을 주는 연탄처럼 일종의 숭고함마저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최고가 되었다는 건 분명 다른 누군가를 딛고 올라섰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그들은 보통 내려가는 법에 익숙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오르막처럼 질주하다가 추하게 넘어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짧은 전성기를 보내고 끝없는 밑바닥을 향해 추락한 워리어가 그랬고 객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스캇 홀이 그랬다. 여기 WCW라는 단체를 한 몸으로 지탱한 거목의 이야기를 풀어보자. 내 영원한 아이콘, 스팅이다.

보통 내 또래의 레슬매니아들에겐 어린 시절 헐크 호건과 워리어, 리젼 오브 둠이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어 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스팅의 팬이었던 이모님의 영향으로 인해 WWF보다 WCW를 더 관심있게 봤고 잘 생긴 얼굴에 다부진 몸매, 항상 터프하고 경쾌했던 스팅에게 자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팬들에게 스팅은 빠르고 파워풀하고 테크니컬한, 비교적 만능인 선수로 기억된다. 이런 스팅이 고작 10주간의 훈련만 받고 곧바로 링에 뛰어든 선수라는 걸 알면 놀라는 팬들도 분명 있으리라. 사실 그는 보디빌더 출신으로,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과 링에 데뷔한 소위 도매급으로 레슬러가 된 경우이다.  스팅이 처음 레슬링을 시작한 UWF시절만 하더라도, 그는 태그팀 파트너 워리어 등 함께 레슬링을 시작한 동료들과 별 차이 없는 그저 몸 좋은 보디빌더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UWF가 JCP로 넘어가고 JCP가 WCW로 바뀌면서 워리어는 WWF로, 스팅은 WCW에 남게 되면서 둘의 행보는 달라진다.


UWF 시절의 스팅


쇼맨십을 중시하는 WWF와 달리 당시의 WCW는 흔히 말하는 남부식의 프로레슬링으로, 시합 내적인 부분에 초점을 둔 스타일이었다. 배운 것도 없이 WCW에 내던져진 스팅이 가진 것이라고는 오로지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신체와 체력 뿐이었고 이를 십분 활용해서 자신의 몸을 아낌 없이 내던지는 파이팅 넘치는 자신만의 프로레슬링을 구사했다. 박력 넘치는 그의 경기는 기술적으로 미흡한 부분들을 말끔히 채워줬고 말하자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단점을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 무게가 배는 됨직한 베이더를 향해 거침없이 몸을 날리는 선수였고, 동시에 칵터스 잭을 압도하는 터프함, 그레이트 무타와 맞먹는 쇼맨십을 보유한 선수가 되었다. 거기에 많이 포장된 게 사실이지만, 스콜피온 데스록을 마무리 기술로 사용하면서 브렛하트와 비견되는 테크니션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1991년 WCW가 NWA에서 독립하면서 WCW 헤비급 챔피언을 신설하자 스팅은 바로 이듬해 렉스 루거로부터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는 스팅이 레슬링을 시작한 지 5년만의 쾌거였는데, 이후 총 6회의 WCW챔프가 됨으로써 7회의 릭 플레어에 이어 가장 많은 타이틀 보유 횟수를 기록하게 된다. 타이틀전을 치르는 동안의 스팅은 당시 동급최강이었던 베이더와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치고 이미 전설인 헐크 호건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기도 하면서 WCW의 정상급 선수르 군림해갔다.

하지만 타이틀 획득 횟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타이틀을 빼았겼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그의 경우는 처음 렉스 루거를 꺾고 챔프가 됐을 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두 달 이상 타이틀을 지켜낸 적이 없었다. 숙적 베이더로부터 따낸 두번째 타이틀은 일주일도 채 안되어 도로 빼앗겼고, 특별심판인 브렛 하트의 도움으로 따낸 3번째 타이틀은 보유기간이 겨우 11일이었다. 또한 DDP를 꺾고 얻어낸 5번째 타이틀은 바로 그 날 4자간 경기에서 도로 DDP에게 내주기도 했다.


그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결코 최강의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최강의 선수라고 하기엔 모자람이 있었고, 다른 후발주자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잡혀주며 그들의 디딤돌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그를 딛고 일어서서 173연승의 골드버그가 나타났고 WCW의 탑페이스 DDP가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부커 T는 5타임 챔프가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WCW의 스타들을 키워내는 요람인 동시에 그들이 단체의 간판이 되기 위해 넘어야 했던 마지막 언덕이었던 셈이다. 또한 90년대 중반에 이미 전성기가 지났다고 생각된 헐크 호건, 랜디 새비지 등을 위해 기꺼이 폴을 내주며 자신의 몫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WCW를 대표하는 선수인 동시에 WCW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WCW 그 자체였다.

스팅이 뱀피로와의 대립을 이어가던 2000년에 WCW는 희망에 부푼 밀레니엄을 맞으며 마지막 불꽃을 태워갔다. 결국 단체는 스팅이 부상으로 쉬고 있던 사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렸고 WWF에 인수되고 말았다. 10년 동안 최고 인기를 구가해 온 단체의 마지막 순간에 링 위에 서있던 것 역시 스팅이었다. 그 때 그 장소에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WCW는 테드 터너와 에릭 비숍 이전에 스팅의 것이기도 했다.


WCW를 대표했던 스팅과 릭 플레어

릭 플레어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선수가 악수를 나누면서 WCW는 사라졌고 스팅의 전설 또한 그렇게 막을 내렸다. DDP나 부커 T, 아웃사이더즈 등 다른 WCW의 선수들이 WWE로 자리를 옮겨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안 스팅은 당시로선 무명 단체인 WWA로 향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프로레슬러가 이름 없는 인디단체에 몸을 의탁한다는 것이 당시로선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팬들은 그가 스팅이기에 납득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이름을 팔아 WWE로부터 버려진 전 WCW 선수들을 수습해 그들이 다시 레슬링을 할 수 있게 도왔고 WCW의 이름이 도매급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았다. 최고의 인기스타 DDP가 스토커가 되고 마지막 챔피언 부커 T가 개그맨이 되던 와중에 그가 WWE에 의탁하지 않은 것은 WCW를 대표한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팬들도 '적어도 스팅만은' 어려운 상황에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그의 의지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후 그가 WWE와 계약을 했다거나 명예의전당에 헌액될 것이라는 풍문이 끊임없이 도는 와중에도 그는 끝까지 지조를 지켜냈고 2005년 WCW의 옛 동료들이 자리잡은 TNA와 계약하게 된다.


스팅은 WCW의 옛 동료들이 자리잡은 TNA와 계약하게 된다

그는 TNA에서도 여전히 어비스, 크리스챤 케이지, 사모아 죠 등 젊고 실력있는 선수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그들의 거름으로 내어주고 있다. 거친 비바람을 맞아 작은 초목들을 지켜내느라 지치고 말라버린 거목은, 이제 현실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자신을 내던져 새로운 거목들을 키워내고 있다. 비록 지금 TNA에서 뛰고 있는 스팅은 분명히 전성기가 지났고 움직임이나 카리스마도 예전같지 못하다. 하지만 그의 다소 무뎌진 모습이 어찌 해볼 수 없던 현실을 그 한 몸으로 버텨내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굴하지 않았던 강인한 의지에 대한 훈장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은 스팅. 더 이상 WCW는 없고 젊은 시절의 그 또한 없다. 하지만 나이든 거목이 아름다운 이유가 오랜 세월 다져온 강인함과 모진 풍파를 겪어온 완숙함 때문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그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늦지 않았다. 그가 스팅이고 그가 있는 지금이 바로 쇼타임이기 때문이다.
"It's Show TIme!"





사진출처 : http://onlineworldofwrestine.com/


Wrestler Rewind<9>-스카티 2 하티


덧글

  • 꽁지머리 2013/02/23 11:28 # 삭제 답글

    스팅 팬으로 정말 멋진글 잘보고 갑니다.
  • ㅇㅇ 2016/01/01 02:22 # 삭제 답글

    이제 WWE에서 일하는 스팅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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